《빛의 파편》 _ 4
4화: 파편의 연대기
"서준아, 우리 그냥 평범하게 살자. 네가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는 게 행복하다면… 응원할게. 근데 그 길, 많이 힘들 거야."
과거의 기억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그건 다섯 해 전, 어머니가 처음으로 그의 꿈을 인정해주며 건넨 말이었다. 한 번도 뒷바라지를 해달라고 한 적 없었던 서준에게, 그 말은 한 줄기 빛 같았다.
어머니는 평범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이었고, 아버지는 서준이 여섯 살 되던 해에 집을 나갔다. 서준은 늘 '가난'과 '포기' 사이에서 살아왔고, 음악은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주는 유리막 같은 존재였다.
지금, 그는 다시 연습실에 있었다.
서준은 무릎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최근 과부하로 오른쪽 무릎이 붓기 시작했지만, 병원에 갈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하루도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던 한유리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당신, 그렇게까지 무대를 원해요?"
서준은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무대에 설 때만, 내가 살아 있다고 느껴요. 관객이 없더라도, 조명 하나라도 있다면."
한유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가볍게 웃으며 종이를 내밀었다.
"그럼, 이걸 받아요. 두 번째 미션이에요. 주제는 '자기 이야기'. 이번엔 각자 2분, 자신만의 서사를 표현하는 무대예요."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션 준비 기간, 참가자들은 개별 연습실을 배정받았다. 서준은 직접 MR을 만들고, 편곡까지 손을 댔다. 그는 작곡과 믹싱을 독학한 경력이 있었고, 이 무대에선 그 능력을 모두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타이틀은 ‘그림자의 노래’.”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는 자신이 겪어온 외면과 침묵, 조용한 절망을 어떻게 음악으로 담아낼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무대 당일.
참가자들은 하나둘 무대 위에 올랐다. 소소한 감동, 오버된 연기, 눈물 짜내기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크게 인상 깊은 무대는 없었다.
"다음은 11번, 이서준."
조명이 꺼지고, 완전한 암전. 천천히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대 중앙에 홀로 선 서준. 손에 들린 마이크조차 없이, 그는 오직 표정과 몸짓, 배경 영상으로만 이야기를 시작했다.
- 골목길, 어두운 뒷방, 혼자 라면을 끓이던 어린 시절.
- 버려진 연습실에서 혼자 춤추던 그림자.
- 심장이 터질 듯한 무대 공포,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들.
음악은 잔잔했지만, 감정은 폭풍 같았다.
“나는 그림자였다.
사람들 뒤에서 흘러가는 존재였다.
그러나 언젠가,
그림자에도 빛이 닿는 날이 오리라 믿었다.”
무대가 끝난 순간, 관객석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천천히 터지는 박수. 처음엔 한 명, 두 명, 곧 장내가 진동할 정도의 기립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날, '이서준'이라는 이름은 HELL IDOL 전체 회차 중 가장 많은 생방송 문자 투표를 기록했다.
패널석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서준 군… 무대 위에 진심이 담겨 있었어요. 진짜 아티스트네요."
그러나 또 다른 그림자가 그의 발밑에 자라고 있었다.
정우석 PD는 스텝들과 회의 중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준을 중심으로 서사를 만들어. 단, 너무 영웅화시키진 마. 다음 주엔, 조금 무너지는 모습도 보여줘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