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빛의 파편》 _ 3

akacyco 2025. 5. 27. 23:08

3화: 독이 든 칼날

“괜찮으세요?”

무대를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이서준은 수많은 스태프와 관계자들의 시선 속에서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꿈꿔온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를 가장 먼저 붙잡은 건, 프로그램 연출을 맡고 있는 메인 PD '정우석'이었다. 중년의 날카로운 눈매에, 차가운 성격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 HELL IDOL의 연출을 맡은 인물이다.

“서준 씨. 가능성 있어요. 편집은 제가 알아서 해드릴게요.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네?”

정우석은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 우리 편 되어줘요. 프로그램 안에 들어오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보일 거예요. 현명하게 선택하면, 저도 밀어드릴 수 있습니다.”

서준은 순간 움찔했지만 고개를 숙였다.

“전, 무대가 전부입니다.”

정우석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돌아섰다.


그날 밤, 서준은 고시원 방으로 돌아왔다. 가로등 불빛조차 흐릿한 2평짜리 방. 벽지는 오래돼 곰팡이 냄새가 배어 있었고, 한 켠에는 구겨진 연습복이 쌓여 있었다.

책상 위엔 가족사진이 한 장. 고등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와 찍은 사진.

서준은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진짜 무대에 섰어.”


다음 날.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난리가 났다.

[#이서준_1분의_레전드]
[#HELL_IDOL_진짜는_누구]
[#이서준_데뷔각]

짧은 1분 퍼포먼스 영상은 하루 만에 300만 뷰를 돌파했고, 실시간 검색어에도 그의 이름이 올랐다.

그러나 성공의 그림자 뒤에는 질투와 음모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쟤가 뭐가 대단하다고 저렇게 떠받들어? 진짜 웃기네.”

HELL IDOL 출연자 중 상위권이라 평가받던 박로한. 대형 기획사 출신, 유명 유튜버와 연애설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 시즌의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지워버려야 해.”

그의 옆에 선 또 다른 참가자 장하윤,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한 화장, 꾸준한 SNS 노출로 입덕을 유도하던 그녀는 로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이 조용히 엮어서 묻어버리자.”

그들은 조용히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제작진에게 악성 루머를 흘리고, 서준이 스태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조작된 제보까지 준비했다.


며칠 뒤.

서준은 회의실로 불려갔다.

“서준 씨, 외부에서 이상한 루머가 돌고 있어요. 확인차 부른 거예요.”

제작진의 말에 그는 당황했다.

“네? 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결코 거짓을 숨기는 눈이 아니었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혼자 남겨진 서준.

그 순간, 문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러니까, 걔가 불쌍한 척하는 것도 연기예요. 저희는 다 봤어요.”

박로한과 장하윤이었다.


“그만해.”

문이 열리고, 한유리가 들어왔다. 그녀는 서류 하나를 책상 위에 던졌다.

“이건 너희 둘이 주고받은 메신저 캡처다. 내가 못 믿어서 백업 따놨지.”

장하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박로한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한유리는 서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너는 내가 지킨다.”


그날 오후, HELL IDOL의 공식 계정에 공지문이 올라왔다.

[공식 공지]
출연자 간 비방과 루머 유포 시도가 발견되어 관련 인물 2인은 무기한 출연 정지 조치합니다.

댓글창에는 이런 말이 넘쳐났다.

  • “서준은 죄 없잖아.”
  • “로한 하윤 이제 안 봅니다.”
  • “진짜는 결국 살아남지.”

늦은 밤, 연습실에서 서준은 조용히 무대를 준비했다.
한유리는 그를 조용히 지켜보다 다가가 말했다.

“기억해요. 당신은 혼자 아니에요. 우리 팀은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물러서지 않아요.”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의 파편》 _ 4  (0) 2025.05.27
《빛의 파편》 _ 2  (0) 2025.05.27
《빛의 파편》 _ 1  (0) 2025.05.27